by 앤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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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태 실장과 김기만 팀장으로부터 디자인팀에 관해서 너무 안 좋은 이야기만 들은 터라, 경계하는 민호는 팀원들을 제대로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자신이 직접 겪고 나서 판단하는 성격이라 선입견을 거두고 하나둘씩 팀원들을 대하니 장단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가장 문제 많다던 남자 직원이 가장 프로페셔널해 보인다.
디자인팀의 유일한 남자 직원, 청일점인 최주연 대리.
그는 집안 형편상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독학으로 디자인을 배운 숨은 인재다.
고졸이 어떻게 이곳에 입사했는지는 의문이지만, 누구보다 작업물의 완성도가 실력자임을 말해 준다.
실력 있고 일을 잘해서인지 그의 주위에는 항상 사람이 모이고 그는 무리의 중심이다.
전해 들은 것과는 다르게 팀원들의 여러 좋은 모습들이 눈에 들어온다.
일을 가장 중시하는 민호는 실장이나 김 팀장과는 다른, 디자이너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디자인 팀원들과 친근해졌다.
대기업이란 곳의 직원 평가 방식은 좀 다르다.
업무 실력만이 아닌, 여러 가지가 평가 요소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곳을 자신의 소굴로 만들고 싶은 김 실장은 자신에게 공손하고 군소리 없는 직원이 일 잘하는 직원인 것이다.
‘업무를 잘하면 되는 게 아니었던가?’ 민호의 생각에는 디자인팀은 문제가 없다.
그런데 정확히 알 수 없는, 뭔가 부자연스러운 흐름과 무언의 압박의 심리적인 부담이 느껴지며 위, 아래 모두에게 잘하고픈 의욕이 넘치는 민호는 며칠간 잠을 설치고 있다.
여러 생각을 해봐도 김 실장과 김 팀장이 무얼 말하려는 것인지 눈치 없는 민호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민호도 디자이너였던지라, 획일적이고 규칙을 중시하는 대기업에서 디자인을 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움이 있을지 얼마간 지내보니 이해가 되었다.
자부심을 가진 디자이너가 획일적으로 일하고 틀에 얽매인다면 머지않아 실력이 퇴보되고 회의감이 들 것이다. 그래서 규칙을 중시하는 대기업에서는 디자인 그룹을 운용하기가 어렵고 외주로 업무를 맡길 수밖에 없음이다. 한 마디로 부조화일 수밖에 없다.
‘디자인 팀을 이해 못 하는 김 실장, 김 팀장과 디자이너 간에 이해충돌이 발생해서 제일 디자이너다운 최주연 대리가 눈에 가시처럼 보이는 것이 아닐까? 중간에서 잘 조절하고 스스로 정도의 길을 가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다 보면 좋게 지나가겠지.’
팀장인 자신이 그 중간에서 잘 해결해야겠다고 단순히 그렇게만 생각한다.
그러나, 김 실장과 김 팀장은 장민호 팀장을 이용해 말 안 듣는 디자이너들을 내쫓으려 했거늘, 자신들의 생각과 다르게 디자이너 편에서 대변하는듯한 모습에 그들과 똑같아 보이기만 할 뿐이다. 외려 벼룩 잡고자 불을 지핀 꼴이 됐다.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디자인 팀이 더욱 똘똘 뭉쳐가는 모양새다.
그들은 디자이너의 특성을 알지 못하고 디자인 팀장을 뽑은 게 잘못이었다. 민호도 디자이너였고 그들의 고충을 이해하고 있었다.
김 실장과 김 팀장은 디자이너들이 더욱 보기 싫어졌다.
‘그렇게 첫날부터 신신당부를 했건만, 이제 어쩐담?’ 실장은 고민스럽다.
‘옳거니, 일을 숨 쉴 틈 없이 줘야겠다. 제풀에 나가떨어지든지, 디자이너들끼리 분쟁이 나든지 할 거야!’
민호에게 쉴 틈 없이 일이 몰린다.
큰 거, 작은 거 포함해서 수십 개의 일을 진행 중이다. 정신이 없다.
누가 봐도 밉보인 것처럼 실장은 없는 일도 만들어 계속 일만 주고 있다.
그러나 민호는 군소리 없이 팀원을 돌보며 하루하루 정신없이 최선을 다해 일해내고 있다.
입사할 때의 결심을 되뇌며….
김기만 과장 눈에는 새로 입사한 디자인 팀장도 똘아이 같다.
디자이너들은 하나같이 이해할 수가 없다.
‘왜 쉬운 길을 두고 저렇게 일을 할까? 실장 라인에 서서 디자이너들을 내몰면 될 텐데. 저 자식 바보 같구만, 곧 제풀에 나가겠는걸! 그전에 디자이너 정리가 돼야 할 텐데.’ 김기만 과장은 자신의 목적 이외엔 관심이 없다.
민호는 시간이 지날수록 지친다.
밑 빠진 독처럼 일이 끝날 기미 없이 쌓여만 가고, 실장과 다른 팀장들은 자신 때문에 오히려 디자인 팀을 더욱 멀리하는 것 같다.
혼자 고집만 부리는 게 아닌지, 길이 안 보이니 나약한 감정이 꾸물댄다.
‘소통 잘 되는 팀장이라 했던가? 언제까지 이렇게 버틸 순 없다.’
그도 한낮 나약한 인간인지라 상황이 안 좋아지니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대기업의 풍토는 바뀌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며 ‘적은 쪽이 바뀌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단순한 생각은 주연 대리를 자꾸 미꾸라지로 인식하려 들었다.
주연 대리는 실력은 있지만, 그들의 말처럼 상관의 지시를 무시하는 듯한 행동과 무성의한 답변은 왜 그렇게 상사들이 싫어하는지 한편으론 이해가 갔다.
실력은 있지만, 이런 대기업에 맞지 않는 체질이다. 그로 인해 팀 분위기 전체가 기업과 맞질 않으며 어긋나고 소외된다는 생각이 든다.
‘미꾸라지 한 마리로 전체를 흐릴 순 없는 노릇, 소탐대실할 순 없다. 설사 그가 앞으로 백조로 변하더래도 지금은 미운오리새끼에 불과하다.’
그들의 바람대로 그 고민이 장 팀장에게로 옮겨 붙었다.
‘잘 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과연 물갈이를 할 것인가? 환골탈태를 시킬 것인가?
주연 대리에 대한 이미지는 비슷하게 느꼈으나, 그에 대한 고민의 질은 극명히 다른 것이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어쨌거나 그는 원흉의 불씨인지라 꺼야만 했다.
판도라의 상자라고나 할까.
팀장으로서 평온함이 필요했고 그 아이는 불란의 중심이었다.
본인은 못 느끼지만, 온 사방의 기가 그렇게 흐르고 있고 그 기를 차단하려면 그 아이를 내 보내는 수밖에….
민호는 자신의 욕심이 아닌, 다수의 평화와 화합을 위한 결정이라고 치부해 버렸다.
그들이 원하는 결과와 같겠지만, 의도와 풀어나가는 방법은 다르다고 스스로 주문을 걸며 김 실장과 이야기하여 자신이 알고 있는 실력 있는 디자이너를 채용했다.
결국 민호는 모두를 위한다는 핑계를 대며 선의의 경쟁이라는 포장을 하고 잔인하게 실장과 똑같은 짓을 하고 있는 모양새다.
민호는 대기업이라는 먹이사슬이 넘쳐대는 이 정글에서 무사히 살아남기 위해 어느새 적응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민호는 진심으로 잘하고자 했거늘, 과연 그들과 같은가? 다른가?
지쳐 포기한 것인지, 다른 길을 보는 것인지 아직은 알 수 없었다.
새로 입사한 윤병민 대리도 주연 대리처럼 고졸의 천재성을 가진 실력파다.
둘은 비슷한 면모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일까? 서로 첫눈에 잘 통하는 느낌을 받았다.
신기술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심이 남달랐고 일에 대한 욕심이 있어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만났더라면 서로에게 자극이 되는 좋은 동료 관계로 상호 발전할 수 있는 관계가 될 게 확실했다.
그러나, 둘 중 하나는 퇴장해야 하는 운명인 서로 경쟁자인 것을 아직 모른다.
신입 직원은 입사 추천한 든든한 지원군인 팀장이 있으나, 오히려 2년을 다닌 주연 대리는 망망대해에 돛 하나 달고 위태하게 떠다니고 있는 꼴이다. 그간 줄을 안 서고 일만 탐독했던 결과가 이토록 그의 자리를 불안하게 만든 것이다. 사방에서 물이 언제 덮쳐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인 것이다. 오래 버티기 위해서는 일 하나만 잘해선 안 되는, 오히려 그보다 다른 게 더 중요한 곳이 대기업이라는 곳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주연 대리는 자신과 비슷한 새로 들어온 윤병민 대리가 맘에 들어 이것저것 가이드를 해준다.
이를 지켜보는 민호는 내심 잘 됐다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참 잔인하다는 생각을 한다.
‘회사 생활의 섭리인 것을 어쩌겠는가.’
적자생존, 무한경쟁, 영원한 동료도 영원한 적도 없는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 정리하며 지켜보기만 할 뿐, 별다른 조치도 필요 없어 보인다.
‘시간이 해결해 줄 테니….’
***
정말 시간이 해결해 주었다.
주연 대리와 병민 대리 그들은 서로 도우며 경쟁했고, 말 그대로 선의의 경쟁을 하는 사이, 팀 내 분위기도 좋아지고 더불어 회사 전반적인 분위기가 좋아진 듯했다.
민호는 잘 됐다 생각하며 안심했다.
그러나 김 실장과 김 팀장은 디자인 팀이 와해되는 모습이 아닌 서로 협력하고 단합하는 모습에 몹시 못마땅했다. 그들이 바란 건 자기들에게 복종하는 것, 자신의 세력을 키우는 게 주목적이지 디자인 팀, 회사가 잘 돌아가는 게 아니었다.
더군다나 장 팀장의 세력이 오히려 커지는 모양새로 흐르고 있으니, 생각지 못하게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김기만 팀장은 걱정이 된다.
김 실장을 밀어내기 전에 이인자 자리를 장 팀장에게 빼앗길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든다.
‘이대론 안 되겠어, 김 실장에게 악마의 속삭임을 전해야겠군. 후후’
다시 한번 주특기인 잔머리를 굴려본다.
“실장님, 저것들 저렇게 놔두면 안 됩니다.”
“왜? 보기 좋구만, 별문제 없잖아?” 김 실장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속에 없는 말을 한다. 가식이라면 한 가식하는 능구렁이 같은 부장이다.
뻔히 김 실장의 속을 아는 김 팀장은 모르는 체하며 악인의 역할을 자처한다.
“상관의 말을 쥐똥으로 듣는 저것들을 그냥 놔두면 다른 직원들도 본받을 겁니다. 회사 전체적으로 문제 생깁니다. 특히, 우리처럼 모회사의 일을 처리하는 기업은 더더욱 상하 체계가 중요합니다.”
“음, 듣고 보니 그렇구만.”
김 실장은 속으로 이때다 싶다. 안 그래도 걱정됐는데 딱 맞게 김 팀장이 터트려 주는 것이다.
‘이 녀석, 못된 녀석이지만 맘에 든 단 말이야, 잘 이용할 수 있겠어.’
“김 팀장, 그럼 어떡하면 좋겠나?”
“티오가 없는데 한 녀석 잘라야죠.”
“너무 잔인하지 않나?”
“뭐 어때요. 장 팀장 보고 알아서 하라고 하면 되죠. 처음 신규 인력을 채용할 때 한 말에 책임을 져야죠. 아니면 자기가 나가든가. 저희는 뒤에서 조종만 하면 됩니다. 문제 될 거 없어요, 실장님.”
“그래? 알았네. 자네가 잘 진행해 보게.”
좋지 않은 일에는 빠져 있는 게 상책이라 뒤로 물러나는 영악한 김 실장이다.
뻔히 알면서 크게 대답하는 김 팀장.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실장님.”
‘더러운 새끼, 일단 내가 나서 주지, 나중에 보자고. 하하하’ 김 팀장은 속으로 웃으며 칼을 간다.
대기업에 오래 몸담으며 정치질과 이간질에 도가 튼 것이 많이도 닮아 너무 잘 통하는 그들이다.
***
김 팀장이 저녁에 술 한잔하자고 한다.
민호는 내키진 않았지만, 중요한 할 말이 있다기에 저녁에 보기로 했다.
자신을 입사 추천했다고 해서 김 팀장과 친해지려고 노력했지만, 이상하게 핀트가 잘 안 맞는다.
자신과는 좀 다른 인간처럼 느껴진다. 한마디로 잘 안 맞는다.
그래서 굳이 노력을 안 하고 있었는데.
‘음, 왜 보자는 거지? 부담스럽지만 일단 나가보자.’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닌데, 어울리지 않게 오뎅빠라니?'
추운 날씨 때문인지 따뜻한 오뎅국물이 몸에 들어오자 긴장이 풀린다.
소주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마신다.
“장 팀장, 우리가 앞으로 회사를 책임져야 하지 않겠나? 실장님이 디자인팀에 대해 걱정이 많아. 특히 주연 대리 그 녀석 위, 아래가 없다고 말이야. 우리 회사는 위계질서가 무너지면 그걸로 끝이야.
실장님이 주연 대리 자르란다, 이런 말을 나보고 전달하라지 않나 글쎄. 우리 실장님 못됐다니까. 장 팀장 자네가 힘들겠지만 자네가 나갈 거 아니면 주연 대리 내보내게.”
“…, 요즘은 회사에 잘하고 있는데 그냥 좀 더 지켜보면 안 되려나? 실장님에게 내가 물어봐야겠어.”
“친구 같아서 하는 말인데, 김 실장 믿지 말게. 뒤가 구린 사람이야, 악역은 하기 싫어서 내게 시킨 거야. 이 문제로 말 걸었다가는 오히려 장 팀장 네가 실장 눈 밖에 난다니까, 그냥 주연 대리를 내보내.”
날씨가 추워서인가 오늘따라 쓴 소주가 잘 들어간다.
어쩔 수 없이 처음엔 그렇게 의도했던 상황이지만, 오히려 잘 풀려서 함께하는 미래를 그리고 있었건만 결국 그 인간들이 작당을 했다.
그들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나, 정말 이렇게 내몰리게 되리라고는….
걱정이 현실이 된 것이다.
민호는 그들과는 앞으로 함께 할 수 없으며 새롭게 개척해야 살아갈 수 있음을 직감했다.
이제 팀도 보호하고 그들도 경계해야 한다.
‘어쩐다? 티오가 없어서 주연 대리와 함께 할 핑곗거리가 없다.’
고민이 깊어간다.
전화위복(轉禍爲福)인 줄 알았건만, 결국 주연 대리는 회사를 나가게 됐다.
민호 자신도 물갈이를 위해 채용되어 지금 이용당하는 중인데, 그것도 모르고 그들과 똑같이 누군가를 몰아내기 위해 다른 친구를 채용한 꼴이다.
자신을 위한 게 아닌 전체의 평온을 위한다는 민호의 생각은 주연 대리의 퇴사로 인해 핑계로 보일 뿐이었다.
민호는 스스로 그들과 다르다 생각했으나, 결국 한배를 타고 있는 지금 과연 무엇이 다른가?
또다시 후회를 하고 있다.
마음이 불편하고 또한 그들과 닮아가지 않으려 발버둥 치듯 의식적으로 그들을 더욱 멀리했다.
이곳에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모든 것들을 일이라고 치부하고 만다. 그러나 민호는 그렇게 생각하질 못했다.
일이 아닌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생각이 민호를 더욱 힘들게 했다.
※ 티오 : 정원 또는 빈자리를 말하는 조직 인사 용어
※ 전화위복(轉禍爲福) : 재앙이 바뀌어 오히려 좋은 일이 생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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