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앤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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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끼운 첫 단추처럼 첫 직장은 계속 사람을 꼬이게 만들어 그곳을 도망치듯 나온 흥수는 이곳 동화사가 낯설다.
이곳 사람들은 순진하고 따뜻한, 결이 다른 느낌이다.
이른 아침부터 대회의실에서 글 작가, 그림 작가, 일러스트레이터가 머리를 맞대고 회의에 열중이다.
이번에는 창작동화집을 만든다.
즐겁게 꿈을 좇아 일하는 사람들,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며 스스로의 일에 자부심을 느끼는 그들이다.
전체총괄과 기획팀장을 담당하고 있는 김은희 실장이 회의를 리딩한다.
“이번에 출시할 동화는 창작동화입니다. 좋은 아이디어 없나요? 아이디어 채택되면 선물 있어요.” 둘러보며 “거기 잘생긴 새로 오신 분 아이디어 좀 내보세요?”
“아! 저요?”
영업을 하려면 업무전반적인 것을 알아야 한다며 인사담당 김재운 차장이 흥수를 회의실로 잠시 끌고 들어간 자리에서 갑자기 질문을 받은 것이다.
“네, 이름이 뭐라고 하셨죠?”
“박흥수라고 합니다.”
“흥이 있어 잘 노시겠어요?”
“하하하, 호호호” 순간 회의실이 웃음바다가 돼 버렸다.
흥수도 덩달아 따라 웃고 있었다.
낯설지만 따뜻한 기운이 온몸을 감싼다.
‘아~! 이곳 왠지 정이 간다.’
김은희 실장은 짙은 갈색 뿔테안경을 쓰고 사자깃털처럼 풍성한 갈색파마머리라 얼핏 보면 우스꽝스럽게도 보인다. 마흔은 족히 넘어 보이는, 일만 하다 나이만 먹은 일벌레 노처녀로 소문이 나있다.
그러나 그녀에겐 비밀이 있다.
비밀이라기보다는 굳이 말하지 않는 사실, 이혼녀.
그것도 애가 딸린.
젊은 시절 그녀는, 명문대를 나온 두려울 것 없는 똑소리 나고 오만한 잘난 여자였다. 그래서 웬만한 남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다 남자의 외모에 잠깐 홀려 불같은 사랑을 진정한 사랑으로 생각하고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면서 결혼까지 했지만 박식하고 딱 부러지는 성격 때문인지 외모에 반해 결혼한 사랑은 금세 식어 버렸고 남자와는 2년도 체 못살고 헤어졌다.
장작불 같은 불타는 짧은 사랑을 했고 작은 불씨를 남겼다. 남자를 닮은 사내아이를.
어린 아들은 부모에게 맡기고 주말에만 아들을 만나며 살고 있는 애 딸린 이혼녀였다.
이곳에선 아무도 묻지 않았고 그녀도 굳이 말하지 않았다.
다들 일만 하다 나이만 먹은 노처녀로 알뿐이었다.
그녀도 지금은 일 외에는 관심이 없었고 일벌레로 소문나는 게 오히려 좋았다.
일도 적성에 맞아 재미있게 일하지만, 사연이 있어선지 자세히 보면 눈망울에 외로움이 묻어 있고 그걸 가리고자 올려 쓴 두꺼운 뿔테안경과 얹혀진 사자파마머리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도 여전히 눈빛과 말투에는 기획팀장 아니랄까 봐 예리함과 총명함이 넘친다.
“그럼 이제부터 박 대리가 아닌 흥 대리로 부를까요? 호호호.”
기획팀장 옆에 있던 디자인팀장이 한 마디 거들자, 이번에도 회의실에는 웃음으로 넘쳐댄다.
디자인팀장 황정선 부장, 그녀는 김은희 실장과 단짝이다.
건강한 체구에 야무진 얼굴을 한 베테랑디자이너.
믿음 가는 외모에 실력까지 겸비하고 화무십일홍(化無十日紅)을 신조처럼 달고 살 정도로 겸손하기까지 해서 직원들이 잘 따르고 리더십을 갖춘 인재다.
민호도 그녀의 수하에 있으며 그녀를 많이 신뢰하는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뚝심 비슷한 게 민호뿐만 아니라, 디자인팀 전체가 팀장을 닮아 있다. 팀장을 필두로 똘똘 뭉쳐 동화를 만든다.
황정선 팀장은 디자인 전공으로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다방면으로 디자인 일을 하며 실력을 키워왔다.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모니터 앞에 앉아, 수없이 많은 날을 디자인과 밤을 지새웠다.
일에 있어서의 욕심과 자부심은 그녀를 성장시켰고 그런 뚝심은 자연스레 주변사람이 그녀를 따르게 했고 리더십이라는 이름으로 보답해 주었다.
어느새 그녀는 이곳의 실세가 되어 있었고 기획 팀장처럼 그녀의 사생활도 베일에 가려진 체 오로지 일만 하는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일하다 보면 어느새 저녁식사 시간이 되고 남아 일하고 있는 기획팀장과 저녁을 먹게 된다.
그러면서 저녁식사동지가 되고 단짝이 되었다.
주위사람은 다 아는데 정작 본인들만 모르는 일벌레동지.
이 둘은 이곳 동화사의 살림을 끌고 가는 양대 산맥이자 기둥인 셈이다.
사람들의 관심에 흥수는 놀림을 당한 건지는 몰라도 지금껏 느끼지 못한 따뜻한 관심에 마음의 빗장이 풀어짐을 느끼며 회의를 좀 더 지켜보다 김재운 차장과 함께 슬그머니 빠져나왔다.
“어때요? 당황했죠? 김 실장님이 원래 즉흥적이라 사람을 당황케 하는 게 있지만 악의는 없으니 좋게 생각하세요. 곧 적응될 테니, 하하하”
“네, 괜찮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흥수생각에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의문이 드는 첫 번째는 야근을 거의 매일 밥 먹듯이 하는데 저렇게 즐겁게 일을 할 수 있을까? 돈 벌기 위해 일을 해온 흥수는 야근도 돈이 돼야 했다. 추가수당도 없는데 저녁밥을 먹고 당연스레 책상으로 가서 즐겁게 일하는 모습의 그들이 이해가 되질 않는다.
두 번째 드는 의문은 남의 일도 자기 일처럼 돕는다. 상대가 못해야 자신이 돋보이는 경쟁사회에서 이런 게 가능한가? 흥수는 자신에게 득이 되는 일이 아니면 그동안 직장에서 누굴 도운 적이 없다. 특히, 직급이 비슷한 또래끼리는.
세 번째, 회식자리에서도 대부분 일 이야기를 한다. 하루 종일 업무에 시달렸는데 업무 외 시간인 술자리에서까지 일이야기라니, 오 마이 갓!
일이 즐거우면 그렇다는데 그로서는 전혀 이해할 수가 없다.
흥수는 자신과 달라서 그러겠거니 가볍게 생각한다.
이런 분위기, 이런 곳에 적응 중이고 이 낯선 곳에 힘든 시절 동고동락했던 그의 군대동기 민호가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
흥수가 소속된 영업팀은 주로 동화책을 판매하는 일을 담당한다.
시대흐름에 맞춰 동화책을 전자북으로 출판하면서 인력이 필요해짐에 따라 흥수가 채용된 것이다.
흥수의 업무는 내부에서 열심히 만든 창작학습동화영상을 온라인도서관에 탑재하여 동화책과 함께 전국초등학교에 판매를 하는 것인데, 학교를 방문하여 담당선생님에게 온라인도서관 사용법을 교육한 후 책과 함께 전달하고 계속 거래처도 관리해야 한다.
동화를 책뿐만이 아닌 움직이는 영상으로 더욱 생동감 있게 볼 수 있는 것이다.
21세기가 시작되면서 월드컵이 성대히 치러지고 나라분위기는 꿈에 부푼 듯하다.
이런 분위기에 탑승을 한 건지 움직이는 전자동화서비스는 학교선생님들에게 설명을 하면 호응이 좋다.
움직이는 영상동화라 기존 책으로만 보던 방식과 달라 신기하기도 하고 타 학교가 서비스를 하는데 안 하면 뒤쳐진다는 생각에, 그리고 아이들도 좋아하니 어렵지 않게 판매되고 회사매출의 큰 비중을 담당하는 주요 서비스가 되었다.
흥수는 적절한 타이밍에 입사한 셈이다.
흥수가 팔고 있는 전자도서관을 만드는 웹디자인 담당자가 장민호다.
군 제대 후 7년이 지나 다시 만난 것이다.
‘예전에 진 빚을 갚으라는 것인가?’ 흥수는 인연이란 생각을 한다.
그런데 이번에도 도움만 받고 있다.
입사하여 이것저것 그에게 물어보며 적응 중인 데다 업무도 같이해야 해서 한편으로는 미안함이 계속 쌓여가는 건 어쩔 수 없다.
어쨌건, 자의로든 타의로든 자주 볼 수 있는 상황이 되어 업무적으로는 물론 심적으로도 위안이 된다.
흥수에게 회사란 먹고살기 위해 발악하며 다니는 그런 곳이지 기분을 논하며 다니는 그런 곳이 아닌데, 이곳에 와서는 이상하게 출근하는 마음이 좀 달라진 거 같은 생각이 든다.
‘업무상 동화를 자꾸 보다 보니, 이곳 사람들에게 동화가 된 것일까? 아니면 그 아이가 있어서일까?’
민호는 군 시절의 모습과는 다르게 많이 변해 있었다.
적극적이고 자기 일에 열심인 전문가스러운 프로의 느낌에 친절하고 따뜻하기까지 하다.
열심히 일하는 그가 아름다웠다.
군 시절, 굼뜨던 3번 훈련병이 아니었다.
‘그는 나를 어떤 모습으로 기억할까? 나 138기 향도 박흥수를….’
***
영업부와 디자인부서의 인원으로 임시구성된 전자도서관팀이 매일 오전마다 원탁식탁에 둘러앉아 자유롭게 아이디어미팅을 한다. 담당디자이너와 판매담당, 전자도서관 팀장은 필수참석인원이라 흥수와 민호는 자주 볼 수 있게 되었다.
민호는 전자동화를 담을 전자도서관디자인을 프로젝터에 띄워놓고 설명을 한다.
“이번 도서관디자인은 동물시리즈로 갑니다. 사용자가 다양한 동물스킨을 골라서 도서관을 꾸밀 수 있도록 디자인을 구상 중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꿈을 담아 만든 창작물을 학교담당자들에게 어필해야 잘 팔 수 있을 텐데….’
흥수가 머릿속에서만 이 생각 저 생각하는 사이, 영업부 도서관 팀장 김광은이 끼어든다.
“음, 좋은데요.”
“그런 기특한 발상을 어떻게 했지? 멋지게만 만들어줘요. 책은 우리가 알아서 팔 테니. 하하하”
흥수의 직속상관 김광은 팀장.
그는 허풍이 심한 말 많은 남성우월주의에 권위주의, 아무튼 못된 것들을 골고루 가지고 있는 이곳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런 사람이다.
흥수는 김광은 팀장과 같은 팀이다 보니 아무도 모르는 그런 미세한 부분까지 알게 되었고, 자신도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 건 마찬가지지만 아무리 영업사원이래도 오로지 돈밖에 모르는 속물인 꼰대 같은 팀장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 못된 팀장이 민호와 자신사이에 끼어 있는 것이다.
어딜 가나 이런 못된 인간은 존재하는 것일까? 출근하면 꼭 아침마다 담배를 피자며 밖으로 불러낸다.
상관이 불러낸 것도 싫은데 이 사람 저 사람 험담만 해댄다.
특히, 회사와 사장에 대해서.
흥수는 이곳이 따뜻한 회사라 낯설게 느꼈는데 팀장 눈에는 지루하고 문제 많은 곳으로 생각을 하는 것이다. 흥수는 팀장얼굴에서 군 시절 김기민 조교의 얼굴이 자주 오버랩됨을 느낀다.
이렇듯 영업부에는 동화와 어울리지 않는 인간들이 모여 있다.
이곳의 왕따는 영업부, 인싸는 당연히 디자인부서다.
온라인서비스의 업무가 처음인 초보라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아침마다 진행되는 아이디어회의에서 보여주는 민호의 디자인은 흥수를 놀라게 한다.
‘자식, 멋있는데….’
전문가처럼 꼼꼼하게 기술로 일하는 모습과 사회물이라곤 전혀 안 든 거 같은 순진하고 착해 보이는 민호의 모습에서 자신과는 많이 다른 삶을 살아왔을 거라는 짐작과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속물이 되어 있는 나와는 다르군. 훗’
시간이 지나고 가까워질수록 민호의 그런 순진함과 착함은 오히려 흥수의 본모습을 더욱 감추게 했고 민호가 힘겹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민호는 이곳에서 인기쟁이다.
이곳의 실세 황 팀장과 김 실장은 귀엽고 일 잘하는 그를 무척 아끼고 좋아하는 눈치다.
동화를 다루니, 동화처럼 순진하고 깨끗한 그를 좋아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흥수가 생각하는 직장생활은 표리부동하게 지내는 게 당연한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상처만 생기는 곳인데 자신과 다르게 때 묻지 않은 동기 녀석의 존재는 자신이 살아온 인생에 대한 후회와 고민을 안겨주었고 동시에 화가 났다.
‘너 그렇게 살면 안 돼. 다친다. 내가 좀 더럽혀줄게. 더러운 것도 문제지만, 깨끗해도 문제란다.’
새 신발을 보면 밟아서 더럽히고 싶듯이, 흥수 자신도 모르게 악마의 기운이 꾸물꾸물 올라왔다.
***
디자인실은 흐르는 음악 때문인지 자유롭고 포근한 느낌을 준다.
디자인부서의 어린 막내디자이너인 지수는 날마다 다른 음악을 플레이하는 디제이다.
어느 날은 클래식하게 어느 날은 재즈 하게 그날그날 분위기에 맞게 음악이 흐르는 선곡 맛집이다.
사방에 걸려있는 동화캐릭터들과 키 큰 식물들도 음악에 맞춰 춤을 추듯 살아 숨 쉬는 것처럼, 공간에 있는 것들이 한데 잘 어우러져 디자인도 절로 나올 거 같은 기분 좋아지는 공간이다.
흥수는 디자인실에 들어서며 민호 주변을 살핀다.
민호 옆에 앉아서 아옹다옹 케미 돋는 동갑내기 윤인석 대리가 눈에 띈다.
이곳에서 그는 캐릭터를 담당하는 디자이너로 동화책 만들 때 핵심인물이다.
디자인부서의 캐릭터팀의 팀장 역할이며 부서전체에서는 터줏대감처럼 디자인실의 실장역할을 하고 있는 디자인부서의 실세다.
섬세함을 요하는 디자인을 해서인지 날카로운 눈매와 깡마른 체구는 예민해 보이고 까다로울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우선, 그에게 잘 보여야겠군.’
흥수는 옥신각신하고 있는 그들 곁으로 다가가 기분 좋은 말투로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입사한 영업부 박흥수 대리입니다."
"아, 일전에 인사하셨는데.., 반갑습니다."
"전체 인사드린 건데 절 기억하시네요? 동갑내기 같아서 따로 인사드려요. 친하게 지내고 싶습니다. 하하하"
"네~~, 잘 지내보시죠. 하하"
말끔하게 정장을 입고 친밀하게 인사하는 흥수에게 호감이 가서인지 윤인석 대리는 까다로워 보이는 외모와는 다르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흥수가 디자인실 밖으로 나가자, “민호야, 니 군 동기라며? 야, 너랑 완전 딴판인데 하하하.”
민호와 다시 옥신각신 떠들기 시작한다. 흡사 대학 강의실같이 활기차고 재미난 분위기의 젊은 디자인실이다.
퇴근 때마다 삼총사라도 된 듯 동갑내기인 그들은 함께 어울렸다.
하루, 이틀 술자리가 잦아지고 참새가 방앗간을 찾는 것처럼 술집을 순례라도 하듯이 어느새 일과처럼 되어가고 때론 다른 동료들도 합석하며 자리가 커져만 갔다.
고깃집-호프집-노래방-칵테일바로 이어지는 술자리.
흥수는 다년간 영업으로 다져진 술빨로 순식간에 분위기 메이커가 되어 어느새 술자리의 주동자가 돼 버렸다.
아웃사이더가 되지 않으려면 흥수가 제안하는 모임에 참석해야만 하는 것이다.
함께하지 못한 자는 그날의 안주거리가 된다. 물론 안주거리단골인 도서관 팀장 김광은 팀장과 함께.
일만 하던 그들이 어느새 유흥문화를 즐기고 있다.
낮에는 열심히 일하고 밤에는 열심히 놀고. 뭐든 열심히.
민용이와 지수는 남매처럼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귀엽다.
필화 대리는 기획담당이어서인지 말 잘하는 혼기 꽉 찬 여우 같다. 술만 마시면 교태를 부린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맑은 물에 알코올을 부어 버렸다. 독이 될지, 약이 될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지만 술 몇 잔에 맑은 물이 탁해진 건 사실이다.
일 이야기보다는 험담이 끊이질 않으니 말이다.
흥수는 그들에게 뒷담화라는 참맛의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하며 이렇게 쉽게 민호의 주변인을 사로잡아버린 것이다.
그러나 흥수의 최종타깃은 장민호다.
점점 자신처럼 때 묻은 한량으로 만들고자 함인데 민호는 멀쩡하다. 술도 못 마시게 생겼는데 많이 마시고 시간이 흘러도 항상 멀쩡해 보인다.
흥수가 다른 사람과 즐기는 사이 둘러보면 어느새 사라진 그다.
'아뿔싸! 내가 내 꾀에 넘어간 것인가' 유흥에 빠져 오히려 즐기고 있는 흥수다.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혼자 사는 집으로 터벅터벅 돌아가는 길은 몸은 취했는데 새벽의 찬바람 때문일까? 정신은 더욱 또렷해지고 또다시 외로움이 몰려온다.
가시지 않는 갈증이다.
외롭다.
'민호도 혼자 산다는데' 순간 그가 생각나 핸드폰을 꺼내다 이내 호주머니에 다시 집어넣는다.
집에 들어서자 낑낑 대며 흥수를 반기는 개, 이 녀석도 하루 종일 떠돌다 지쳐 집에 들어온 모양이다.
취해 쓰러지는 흥수에게 다가와 혀로 얼굴을 핥는다.
“그래 이리 와라 똥개야.”
외롭고 지친 두 마리가 껴안고 잠이 든다.
※ 화무십일홍(化無十日紅) : 열흘 붉은 꽃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