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앤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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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기업들.
소기업, 중소기업, 대기업.
그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경쟁하며, 하루하루 치열하고 고단하게 살아가고 있다.
오늘도 기업마다 다른 문화와 풍토가 있는, 당신만이 아는 그 일터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
대기업에 다니고 있는 김기만 과장.
오늘도 다름없이 이른 시각에 일터를 향해 집을 나섰다.
해가 뜨기 전이라 어두컴컴하고 쌀쌀한 겨울바람이 뺨을 때리지만 공기는 맑아서 상쾌하다.
강남 한복판에 위치한 직장에 남들보다 일찍 출근하려면 집이 먼 탓에 새벽에 나서야 한다.
회사원 김기만 과장은 육 남매 중 넷째로 태어나 넉넉지 못한 가정 형편으로 부모는 자식을 방목하듯 키웠다. 아니 가난해서 딱히 방법을 찾지 못하고 삶에 허우적 데었고, 놔 놓은 아이들은 스스로 살아남으려면 먹는 것조차 경쟁을 해야 했고 상대를 이겨야 기회가 오고 차지할 수 있는 적자생존의 방식에 익숙해져야 하는 그런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녹록지 않은 환경이지만, 출세를 위해 서울권 대학을 가려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열심히 공부했지만, 삶의 고단함에 높지 않은 성적으론 서울 변두리 대학도 턱걸이로 쉽지 않게 들어갔고, 대기업에 입사하기 위해 수없이 면접을 치르고 나서야 겨우 입사한 대아그룹을 10년째 새벽같이 출근하고 있다.
그렇게 자라온지라, 대기업의 과장이 남들은 별것 아니라 할지라도 김기만 과장에게는 40년 인생을 치열하게 살아온 결과였다.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다니지만, 주변엔 명문대 졸업생들이 즐비하다.
김기만 과장은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들보다 뒤처지는 학력과 없는 학연을 대신해, 윗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이른 출근과 늦은 퇴근을 하며 일도 많이 하는데, 결국 승진하는 건 명문대 졸업생들이다.
이번에 대아 그룹사에서 시대의 흐름에 맞춰 IT 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해 IT 관련 자회사인 지아미디어를 신설하면서 직원 여러 명을 차출했는데, 그중 김기만 과장도 포함되었다.
본사에서는 귀향을 보낸다느니 그런 소문이 돌 만큼 안 좋은 좌천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강했다.
학연이 안 되다 보니, 줄타기도 쉽지 않아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아웃사이더가 되었고, 그로 인해 차출된 게 아닌가 싶어 피해를 본 심정이다.
‘제길, 이럴 줄 알았다. 어쩌겠는가? 그곳에서 인정받아서 다시 화려하게 금의환향하리라. 사장이 회장의 아들이니 그의 눈에 들도록 해야지. IT는 잘 몰라도 모회사 서비스는 잘 알고 있으니 오히려 내겐 기회인지도 모르지.’
팀장이란 역할을 맡게 됐으니 잘 보일 기회가 있을 거라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김기만 과장이 자회사인 지아미디어로 출근하여 보니, IT 인력들을 대거 채용해서 생각보다 규모가 있는 조직의 모양새다.
IT 대기업에서 스카우트해 온 나이 먹은 실장과 프로그래머 출신의 개발팀장 둘에, 김기만 과장을 필두로 한 기획팀, 그리고 디자인팀까지 4개의 팀으로 구성된 조직이다.
김기만 과장은 그들은 경쟁자이고 잘 이용해서 치고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에 벌써 머리를 굴린다.
특히, 실장을 없애야 회장 아들인 대표와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표의 라인을 잡아야 전화위복의 기회가 생기는 거라고,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고, 계속 스스로 다짐을 한다.
‘우선, 실장과 손잡아야겠군. 그러려면 말 잘 듣는 척해야지. 그러고 나서….’
지아미디어는 IT 조직이다 보니 기획자, 디자이너, 프로그래머가 한데 섞여 있는데 김기만 과장은 예기치 않게 디자이너들과 소통이 쉽지 않다.
회식자리에서 잠깐 이야기해 보니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가 없다.
자신들은 이곳을 성공하려 다니는 게 아닌 듯이 크리에이티브 타령이다. 말이 안 통한다.
그날 이후 디자이너들이 자신을 별종 취급이다. 디자이너들을 자신이 관리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김기만 과장은 그들을 그냥 뒀다가는 계획대로 할 수 없겠단 생각에 디자인 팀장을 채용 중이니 자신의 편이 되어 줄 디자인 팀장을 채용하여 그를 통해 정리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고 이력서를 서치하기 시작한다.
지방대 졸업에 디자인은 봐줄 만하고 대기업 이력이 없는 순해 보이고 자신의 말을 잘 듣게 생긴 마땅한 이력을 찾았다. IT 쪽으로만 일을 한 인재니, 실장도 좋다고 할 듯하고.
“실장님, 디자인 팀장에 마땅한 이력이 있어서 추천드려요. 디자이너 관리를 잘할 것 같습니다. 여기 한번 보시죠~”
이력서를 실장에게 내민다.
천천히 이력서를 훑어보는 김완태 실장.
‘음. 괜찮은데, 잘 맞겠어.’
“장민호라…. 김 팀장, 아는 사람인가?”
“아뇨. 구인 사이트 보다가 괜찮길래 추천드리는 겁니다.”
김기만 과장의 지인이 아니란 말에 바로 지시를 내리는 김 실장.
“그래? 좋아, 면접 잡아!”
말끔한 모습으로 아침 일찍 나서는 장민호.
그는 콘텐츠 회사인 동화사를 퇴사하며 사람 관계와 자신의 앞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결혼하고픈 여자를 만났고 어여쁜 아이도 낳으며 행복과 희망을 쫓으며 다시 시작했다.
다양한 경력을 쌓으며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나고 안정적인 기업으로 이직을 알아보던 차에 아동교육의 대표기업인 대아그룹에서 디자인 팀장을 모집 중이다.
민호는 지방대 출신이라 학력이 못 미친다는 생각은 들지만, 아동교육에 관심이 많고 그간의 다양한 경험으로 업무는 자신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입사 지원을 했다.
그런데, 면접 보자는 연락이 온 것이다.
부푼 마음으로 말끔한 구두와 정장을 갖춰 입고 면접장으로 향하며 하늘을 보니 오늘따라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파랗다.
상쾌한 공기를 깊게 들이마시며 날씨 때문인지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기분이다.
복잡한 전철을 타고 강남 한복판의 높은 빌딩 숲 사이에 자리한 대아그룹 사옥 앞에 도착하여 건물을 올려다본다.
은빛 유리로 덮인 건물은 햇빛에 반사되어, 은빛 철갑 비늘을 두른 용이 하늘을 오르는 것 마냥 파란 하늘을 향해 길게 뻗어 있다.
목덜미가 뻐근하다.
바짝 긴장된 심신을 가라앉히려 숨을 길게 내쉬고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면접장에 들어서자, 흰 와이셔츠에 검은 양복 차림의 임원 2명이 민호를 맞이한다.
“이번에 대아그룹에서 자회사를 설립하면서 새롭게 시작하는 거나 다름없어요. 그래서 상호 간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합니다. 잘할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저도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임하겠습니다.”
민호는 소통이 잘 되는 디자인 팀장을 구한다는 데 업무에 있어서의 오랜 노하우로 자신 있었기에 자신이라고 말하며 이제부터 시작이란 각오로 임하고 있다.
바짝 긴장했는데 면접관은 별다른 질문이 없다.
이미 확정한 상태로 면접을 진행한 거 같은 분위기다.
‘그래, 됐어!’ 왠지 합격이라도 한 듯한 기분이다.
역시나, 예감대로 며칠 후 출근하라는 연락이 오고 민호는 원하는 회사에 합격하여 열심히 다니겠다는 마음으로 대기업의 자회사인 지아미디어로 기분 좋게 출근을 했다.
지아미디어는 모기업의 IT 서비스와 운영 업무가 주된 일이라 그런지 디자이너와 개발자가 한데 어우러져 있고 오와 열로 맞춰진 네모반듯한 책상에는 큰 모니터만 덜렁 놓여 있어 깨끗하다 못해 삭막하고 획일적인 그런 사무적인 공간이다.
그에 어울리게 흰색 와이셔츠를 입은 정장 차림의 화이트 노동자들이 나란히 앉아 분주하게 일을 하고 있다.
민호는 그간 경험한 직장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지만, 대기업이라 그렇겠거니 생각하고 빨리 적응해서 잘 해내야겠다고 다짐한다.
‘팀을 잘 이끌어봐야지.’
민호는 오랜만에 잘하고픈 의욕이 넘쳐난다.
김완태 실장은 애초에 단도리 칠 생각으로 디자인 팀장의 첫 출근 날부터 저녁식사 자리를 잡아 놓았다.
퇴근시간 김 실장은 우두머리처럼 좌청룡 우백호를 거느린 듯 어깨에 힘을 주고 팀장들과 함께 새사람이 어떤지 맛볼 겸, 횟집으로 향한다.
“묻지도 않고 횟집으로 왔구만, 내가 날것을 좋아해서 말이야.”
“장 팀장은 대기업 경험이 없으니, 내 말만 잘 들으면 될 거야.”
‘대기업은 줄타기라더니, 정말 그런가 보네?’
민호는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긴장된 마음과는 다르게 여유로운 척 웃으면서 답한다.
“네, 실장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하하”
“장 팀장님, 우리 나이도 동갑인데 친하게 지냅시다. 내가 입사 추천했어요. 몰랐죠?” 김기만 과장이 술잔을 권한다.
다들 새사람이 과연 자신과 잘 맞아서 동료가 될 수 있을지 간을 보며 라인 세우기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전에 말 안 듣는 디자인 팀원들을, 장 팀장을 통해 물갈이를 해야 한다.
도무지 관리가 안 돼서 김 실장과 김 과장이 합심하여 디자인 팀장을 뽑은 이유다.
김 실장이 한 마디 한다.
“자네 학력이 달리는데도 내가 자네를 뽑았네. 이곳은 다들 스카이 출신이라 말을 안 들어 먹어, 자 한잔 하세~.”
“…, 열심히 하겠습니다. 실장님!”
학력 이야기에 당황했지만, 민호 자신도 학력에 비해 운 좋게 이곳에 입사했다고 생각하기에 그냥 무심코 넘겨버린다.
김 실장 이야기의 핵심은 학력이 안 되는데도 뽑아 주었으니, 자신의 말에 복종하라는 것인데 아무것도 모르고 충성해 대는 디자인 팀장이 귀여우면서 가엾기까지 하다.
초장(初場)에 아무것도 모르는 장민호 팀장을 디자이너들과 한 배를 태워 우선 그들을 정리하고 이곳, 지아미디어를 장악하려는 심산이다.
김 실장은 두터운 회를 초장에 듬뿍 찍어 입에 넣고 우적우적 씹는다.
욕심보가 두 볼따구니에서 왔다 갔다 한다.
민호는 다른 생각 중이다.
‘팀원을 잘 챙기며 함께 즐겁게 다닐 수 있는 직장이 되도록 잘해야지. 예전과 같이 실수하지 말자’ 고 다짐한다.
민호는 술을 자제하고 싶지만 돌아가며 계속 권하는 바람에 쉴 새 없이 마셨더니, 술이 오르는지 앞에 있는 저 인간들이 속물처럼 느껴진다.
‘저 사람들 인생을 저 회처럼 날로 먹으려 드는 듯, 욕심이 가득해 보인다. 자리 잡힐 때까지는 조심해야겠어.’
출근 첫날이라 긴장한 탓인지 몸은 휘청대나, 정신은 오히려 말똥말똥하다.
다음날, 잠깐 눈만 붙이고 뒤집어지는 속을 안고 흰 와이셔츠에 정장 차림의 멀쩡한 모습으로 일터에 늦지 않게 출근했다.
이제 민호는 대기업의 어엿한 직장인이다.
※ 전화위복(轉禍爲福) : 재앙이 바뀌어 오히려 좋은 일이 생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