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앤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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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하늘은 맑고 바람은 시원하다,
아침 6시, 학생을 실은 자동차는 문화의 도시 경주로 향한다.
남자는 지병이 생긴 이후, 아침잠이 적어진 덕분에 어렵지 않게 일찍 여행 준비를 하고 길을 나설 수 있었다. 드립 커피도 준비하는 여유를 부리며.
계획 없는 여행이지만 도로에서 시간을 버릴 수는 없다는 생각에 그녀와 아들을 재촉하여 깨우고 차 밀릴까 조바심에 서둘러 길을 나섰다.
'경주를 한달음에 갈 수 있을까?' 그녀는 생각한다. 허리병을 달고 사는 남편이 못 미덥다.
'운전연습을 해둘걸, 이제야 생각하면 무얼 하나! 맘 편히 가자~' 쓸데없는 생각이라 치부하고 눈을 감아본다.
스피커에선 우리들의 블루스 OST가 잔잔히 흘러나온다.
I wanna be with you
And I wanna stay with you~~
달리고 달리고 달려 도착한 경주 대릉원.
경주를 검색하면 바로 눈에 띄는 곳.
무덤이 크다.
"우와!"
여기까지 한달음에 왔다는 사실이 무덤의 크기보다 더욱 크게 감동하여 함성이 절로 나온다.
경주 대릉원은 신라시대 고분이 모여있는 고분 유적지로 고분 내부를 볼 수 있는 천마총이 유명하다.
여인네 젖가슴처럼 볼록하게 튀어나온 고분 모양과 청명한 하늘에 새겨진 곡선 라인은 울창하고 파릇한 소나무 숲에서 울리는 새소리와 함께 한가롭고 고즈넉한 오랜 태곳적 역사를 느끼게 한다.
<경주 대릉원>
하늘을 나는 말의 문양이 새겨진 안장이 출토된 천마총 앞에는 사람들의 관람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무덤 안에는 금장식의 액세서리들이 그 시대 권력층임을 말해준다.
역시나 어느 때를 막론하고 계급이 존재하고 권력(부)은 무시할 수가 없는 듯,
죽으면 아무것도 없다지만 과거에도 우리네 삶이 부와 명예 권력을 좇으며 살았고 중심이 된다는 걸 보여준다.
이게 사실이며 현실인 게다.
<천마총 내부>
천마도장니는 고신라의 유일한 미술품이라 하니 그 가치로 이곳을 천마총이라 명명할 정도로 의미가 있다.
문양이 멋스럽다. 옛날이라 하면 구시대적 낡고 뒤떨어진다는 선입견이 있는데 그 시대도 천재로 불리는 자와 생활 속 창작자들이 존재했겠지? 그 시절도 지금, 현재이었을 것이고 오늘을 살았을 테니, 과거와 이어진 오늘이다.
<천마도장니-말의 양쪽배를 가리는 가리개>
고분 사이를 걷다 보면 저 멀리 평야에 굴뚝 모양의 기둥이 쏟아 있다.
'설마?' 맞다.
신라시대 별을 보던 관측소, 그 유명한 첨성대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관측대라는데 그 당시 얼마나 잘 측정했을지? 지금의 날씨예보처럼 엉망은 아니었으리라. 물론 날씨를 맞추는 건 신의 영역이라 여겼을 것이고 고작 절기를 맞추는 수준이었겠으나 그 시절엔 그것도 대단하고 특별한 곳이었으리라.
그래서일까, 유명세에 비해 소박한 모습에 실망할 수도 있겠다.
밤이면 조명으로 색을 두른 첨성대의 모습에 열광하고 있는 모습이라니, 이건 옛날 유적을 감상하는 게 아닌 조명을 감상하는 게 돼버렸다.
"뭐 어때 예쁘면 그만이지"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의미를 생각하면 조명은 그냥 거들뿐, 불필요하다.
<첨성대>
첨성대 둘레 출입금지선을 쳐 놓아 가까이 갈 수 없다.
안에는 흙이 쌓여있고 아늑한 느낌이라는데, 어두운 밤 그 안에서 하늘을 바라보면, 마치 캄캄한 밤 언덕저택의 이층 다락방에서 조그만 창을 통해 빛나는 별을 보듯 작고 네모난 구멍으로 별들이 반짝반짝 빛나고 아름답고 신비로울 것이다.
정호승 시인은 어릴 적에 그 안에서 놀며 지냈다는데, 그래서인지 아호도 첨성(별을 바라본다)이다.
이층 다락방이 첨성대는 아닐지라도 누군가에겐 특별한 장소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의미부여만 된다면 문화재가 아닐지라도 소중한 가치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지나간 곳이 의미가 되도록,
우리의 삶이 가치가 있도록,
의미부여를 하자.
지금 우리 여행도 의미를 세기는 중이다.
셔터를 누르고 좋은 음악을 듣고 그곳의 먹거리에 관심이 가는 건 의미를 부여해 가치 있는 여행이고자 함이다.
추억을 만들고 인생을 가치 있게 하고자 함이다.
사진을 보며 그때를 기억하고 음악소리에 추억에 잠기며 음식을 보며 기억을 소환한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을 떠난다.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해...
<십원빵이지만 치즈가득 삼천원>
다보탑이 그려진 십원빵을 맛보며 다음 행선지는 다보탑이 있는 불국사로 순식간에 정했다.
어릴 적 대표적 수학여행지 경주 불국사이거늘 그녀는 처음이다.
어린 시절을 전라도 끝자락인 완도에서 보낸 탓에 기회가 없었다. 겨우 여수의 오동도 정도로 수학여행을 간듯하다.
그녀는 신라문화의 화려함과 고급스러움의 낯섦이 새롭고 흥미롭다.
전라도와 많이 다른 경상도다.
십원빵을 먹고 나서야 기분 좋아진 아들.
천마총보다 교과서에서 본 유명한 첨성대를 직접 눈앞에서 봤음에 그걸로 의미를 새긴다.
어릴 때부터 현장학습이 중요하다며 주말마다 박물관, 전시관 등을 많이 다닌탓인지 교과서에 나온 건 새로워도 낯설어도 지루하다.
줄 서서 관람하고 사진 찍고 의례히 행사처럼 그렇게 둘러본다.
'남지 않을 견학, 차라리 십원빵을 하나 더 먹었으면..., 다보탑을 열개라도 먹겠네.'
늦은 오후, 불국사에 도착했다.
단체관광을 와서 일렬로 줄 서서 사진 찍기 딱 좋은 사찰 앞.
멋지다. 어느 절이 이만한 경치을 뽐낼까?
남자는 셀카봉을 이용해 우리를 최대한 배경에 담아본다.
<불국사>
계단을 올라 사찰에 들어서는 순간, "와우!"
다보탑에 놀라고 만다.
십원에서 보던 정겨운 다보탑, 그 옆에는 우아한 석가탑이 우리를 반긴다.
몇 미터 사이를 두고 천년을 넘게 함께 바라보았을 다보탑과 석가탑.
오랜 세월 함께하는 부부 사이 같다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쌍탑식 평지가람인 대웅전에는 석가여래와 다보여래가 함께 임하고 있는 영산도량(靈山道場)이다.>
다보탑 옆에 항상 석가탑이 있듯, 그에겐 그녀가 항상 친구처럼 옆에 있다.
심지 곧고 바릇한 그녀가 우아하고 세련된 석가탑이라면 섬세하고 아기자기한 남자는 다보탑이다.
남자는 석가탑이고 싶은데 다보탑을 더 닮았다.
저 쌍탑처럼 언제나 함께 해줄 그와 그녀.
어느 때는 다보탑처럼 재밌게, 어느 때는 석가탑처럼 희망되게 그 자리에 굳건하게 서서 서로를 바라볼 것이다.
"볼만하네! 아니 아주 좋아~"
여느 사찰의 무명의 탑들과는 역시 다른 감동이다.
그녀는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둑한 그림자와 공기가 느껴지며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맞다! 오늘 밤은 어떡하지?'
#가족 #경주 #여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