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앤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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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밖은 차가 달리는 내내 세차게 비가 뿌리고 있다.
차량 와이퍼는 쉴 새 없이 왕복하며 내비게이션과 함께 앞을 밝혀준다.
날 좋은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해안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안의 우리를 상상했건만, 다시 오기 쉽지 않은 남해는 꼭 그러고 싶었는데 궂은 날씨로 허락지 않고 남해 해안도로가 아닌 안전한 고속도로를 통해 빗물을 사정없이 튀기며 여수로 내달리고 있다.
"여수 밤바다"
노랫말 가락 이후 찾는 이 부쩍 많아진, 지인들도 좋다며 꼭 가보라던 여수밤바다를 놓칠세라 너무 늦게 도착하지 않으려 쉼 없이 무작정 달리는 중이다.
날이 어둑해지고, 야경 좋다는 해상 케이블카가 있는 돌산공원으로 향한다.
밤이라 더욱 낯선 길들, 여수 진입부터 하얀 연기를 내뿜는 공장 굴뚝들이 맞이한다.
'뭐지?' 청정지역이라 생각한 여수 이미지가 한순간 희석이 돼버린다.
LG화학 문구들이 눈에 띈다.
차량이 남해고속도로를 통해 여수를 진입하는 바람에 진입과 동시에 공장지대를 접하게 된 것이다.
첫인상이 중요한 것인데 그 낭만의 여수가 공장의 여수로 바뀌는 일순간이다.
'센과 치이로의 행방불명'에서 아름다움 이면에는 어둡고 칙칙한 장소에서 고된 일을 담당하는 이가 있어 그곳이 빛나고 아름다운 것처럼, 왠지 이곳 여수도 이런 공장단지가 있기에 주민들이 생계를 유지하고 다른 아름다움을 함께 가꾸는 게 아닐까? 인생에는 빛과 어둠이 공존하듯이.
기업과 지역 간 상생하며 삶을 나누고 있는가 보다.
그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처럼 굴뚝과 뿜어대는 연기들로 잠시 상상해 본다.
여수의 좁은 도로를 달려 돌산공원 입구에 도착하니 차들이 멈춰 섰다.
유명한 여수 밤바다 야경을 보고자 이 빗길에도 우리처럼 사람들이 몰렸나 보다.

아름다운 여수 밤바다 전경을 높은 돌산공원에서 멀리 내려다 바라보니, 비로 인해 물기를 담은 불빛들이 바닷물에 반사되어 비추는 모습은 고요하고 차분하며 아름답다.
자세히 안을 들여다보면 공장에서 나오는 불빛들과 알 수 없는 불빛들이 섞여 있는 현실이지만, 우리 눈에는 그저 아름다움으로 빛나고 있다.
우리 인생도 사람도 그렇다.
멀리서 보면, 지나고 보면 아름다운데 가까이 자세히 보면 복잡하고 어렵고 사연이 있다.
그냥 바라보는 아름다움이 다가 아니다.
그 아름다움이 더럽고 치사하고 나쁜 것을 불빛으로 치장한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그 모습보다 더 아름답고 빛날 수 있으며, 의미를 가치를 갖게 되면 잊히질 않을 아름다운 전설일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네 인생이 그렇다.
누구는 전자이며, 누구는 후자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삶은 다 다른 것이다.
누구는 밝게 빛나는 무지갯빛일 수도, 누구는 거짓 불빛으로 빛나다 꺼져버릴 수도, 인생은 각양각색이고 각자의 기억으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그래서 죽음은 다 같은 것이 아니다.
저렇게 아름다운데, 차라리 모르는 게 나을 수도...
그래도 낭만의 도시 여수, 낭만포차 거리로 가보련다.
오늘도 숙소는 없지만, 비까지 내리지만 어찌 되리라.
'이 초월은 뭐지?' 하며 우선 가보자, 낭만거리로.
빗방울도 잦아들고 여수 낭만포차 거리에 도착했다.
어제저녁은 숙소 걱정에 초조한 마음으로 여행을 날린 기분이다. 그걸 알기에 오늘은 우선 구경하고 먹고 보자고 생각한다.
아직 안개처럼 날리는 비바람에 후드티와 모자를 눌러쓰고 낭만포차 거리로 가본다.
그래도 숙박업체를 보면 그냥 지나칠 순 없다. 낭만포차 바로 옆 숙소에 전화를 거니 방이 있단다.
그 대신 바가지지만 어쩔 수 없다.
마지막일 수 있는 이 방을 구하지 못하면 맘과는 다르게 오늘 밤도 망쳐버릴 것이다.
그냥 결정해 버린다. 돌산대교가 보이는 숙소로 전망은 이곳도 최고다.
낭만포차거리는 이런 날씨에도 분위기 좋다. 젊은이들의 거리인 양 생동하며 사람도 많다.
붉은 포차 옆에는 검은 바다가 보이고 푸른 조명빛을 받은 빨간 하멜등대는 우리를 반긴다.
"어서 오게나 낭만의 도시 여수에 온 걸 환영하네." 하며 하멜이 친구처럼 친근하게 말을 건다.
조명으로 빛나는 돌산대교에 터지는 폭죽은 운치에 한몫을 담당하고...

오랜만이다. 이 젊은 연애 기분.
포차 안은 젊은이들로 만원이다.
우리도 만원 포차에 젊음으로 무장하고 몸을 맡긴다.
남자둘, 여자 하나.
포차 명물 삼합과 호롱 낙지가 대령되고 데이트에 빠질 수 없는 시원한 소주!
여자는 목으로 넘기는 순간 술이 아닌 물을 마시는 것으로 착각한다.
'아니! 물을 팔아?' 포차에 몸을 싣는 순간 그녀는 젊어졌다.
처음이다. 소주가 물처럼 느껴지기는...

남자도 한숨에 소주를 넘겨버린다.
'숙소도 정했으니, 맘껏 마셔보자!'
계획 없는 여행이라지만, 먼 거리 운전해서 바쁘게 여기까지 달려왔다.
피곤한 상태로 술잔을 기울이니 몸에서 열이 나고 취기가 올라온다.
이렇게 아내와 아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함께 앉아있으니 기분 좋다.
아들은 폰이 아닌 아빠와 엄마에게 집중한다.
남자는 아들과 이야기 나눌 절호의 찬스라고 생각한다.
"우리 아들 무엇이 힘들까?"
아들은 말한다.
"잔소리. 아빠는 80%, 엄마는 50%야!"
헐! 잔소리 안 하고 있다고, 여느 부모와 다르다고 생각하던 남자는 내심 충격이다.
'그것도 엄마보다 잔소리가 심하다니?'
갑자기 스피커에서 나오는 신명 나던 노랫소리가 귀에 거슬린다.
"알았어. 이제 잔소리 안 할게, 대신 대학은 인 서울 해야 해. 짠~"
남자는 그렇게 말하는 자신이 꼰대처럼 느껴진다.
아빠 엄마가 이상하다.
그러나 아들도 기분이 좋다.
'이런 분위기라니!'
이국적인 바다 풍경과 예쁜 조명들은 이번 여행에서 가장 여행 같은 느낌을 선사하고, 기분 좋아 술을 마시는 아빠, 엄마를 보니 자신도 기분이 좋아진다.
비록 알코올이 아닌 탄산음료를 마시고 있지만, 이 분위기는 청량함과 시원함을 준다.
'젊은 시절 이렇게 연애했을 부모님, 사랑의 결실이 나라지!'
아빠가 인 서울 하란다. '까짓 거 한번 해보지 뭐!'
여행덕일까? 이 분위기는 아빠의 말이 잔소리로 안 들린다. 사랑의 소리로 들린다.
"사랑해요. 아빠, 엄마."

#야경 #여수 #낭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