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앤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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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 가는 길은 즐거운 발걸음이다.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센터가 집 가까이 있다.
그림에 관심 많아 젊은 시절에는 전시관을 애써 찾아다녔는데, 이젠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음에도 무슨 전시가 진행되는지 조차 알지 못한다.
삶이 팍팍하다는 이유로, 살기조차 바쁘다는 핑계로 좋아하는걸 하나씩 다른 것에 양보하고, 포기하다 보니 자연스레 뜸해지고 잊히며 내 주변은 살아야 될 이유들로만 찾고 채워지다 보니, 부지불식간에 여유와 즐거움이 사라진다.
한해, 한해 살아가며 점점 나에게로만 그렇게 좁혀지고 매몰되어만 갔다.
그렇게 잊힌 하고팠던 많은 즐거움들 테니스, 피아노, 댄스, 그림, 수영, 여행, …, 기타 등등.
미술관람도 나의 즐거움의 한 가지다.
즐거움을 향하며 누비는 길은, 즐거운 발걸음이다.
도서관에서 대여한 책을 들고 오는 길에 미술 전시관을 지나치며 둘러본다.
"수채화 아트페어"라고 쓰인 큰 현수막이 바람에 팔랑거리고 있다.
봄 하면 따뜻함이 떠오르듯, 커피가 여유를 떠올리듯, 영화가 재미를 떠올리듯,
수채화는 수채화만의 감성적이고 서정적이고 아름답고 부드럽고 낭만 있는 그런 감정들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물에 흩어진 빛으로 서로 경계를 짓지 않는 여유로 감정에 스며드는 수채화의 느낌이 좋다.
그 느낌을 오롯이 받으려면 직접 보는 게 정답이다.
잠깐, 안으로 들어가 본다.
수백 점의 아름다운 수채화가 전시 중이다.
나의 목적이 아닌 잠시 들렀기에 아름다운 작품을 상품구경하듯 쓱 훑고 빠르게 지나쳐 나온다.
주말에 그녀와 함께 다시 올 생각을 하며….
'그녀에게 기분전환이 되려나?'
요즘 우리는 사는 거에 속박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좀 무겁고 우울하고 긴장하고 있다고 할까? 내 병세와 고3아들과 그 사이에 껴 있는 그녀.
안정적이고 편하고 여유롭고 차분하고 밝지는 않다.
고작 무료 전시회로 오래된 감정과 분위기가 해소될까마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해외여행급은 아닐지라도,
갈증 난 마라토너가 달리다 마시는 물처럼,
산 중턱쯤 힘듦이 몰려올 때 등산을 하며 먹는 오이의 상큼함처럼,
당이 떨어졌을 때 먹는 사탕 한 알처럼 작지만 어디에도 비교 못할 간절함이고 기분전환이 될 수 있다.
작은 것에 감사하며 기쁨을 느껴보고자 한다.
우리 상황은 그렇다. "소확행"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도 필요하다.
간절할 때, 힘겨울 때는 작은 것에도 행복감이 따라오는 건 사실이다.
주말오후,
무슨 이벤트라도 준비한 양 미술전시관으로 그녀를 끌고 간다.
그녀와 함께 오랜만에 작품을 천천히 감상하며 여유롭게 거닐고 있다.
동영상, 이미지, 디지털, 빠름, 강렬함에 익숙해져 있던 우리가 어느새 예전 전시장을 찾던 그때로 돌아가 향수 묻는, 나무액자 틀에 고이 감싸진 도화지에 다채로운 색의 빛과 물로 채워진 붓질이 살아있는 생화(生畵)를 보고 있다.
예전 익숙하던 향수, 차분, 여유의 낯설지 않은 즐거움으로 살며시 천천히 빠져든다.
'우와 멋지다!'
세세하게 묘사한 모습과 상상을 더한 그림들에 시공간을 초월한 감정이 느껴진다.
울긋불긋 자연스럽게 퍼진 색감과 부드럽고 따듯한 느낌, 간간히 유화의 강열한 붓터치도 사실감 있게 느껴지고...
작가마다의 색깔로 우리에게 손짓하며 눈과 뇌를 자극하여 마음을 열게 한다.
'아름답다!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였을까?'
자그마한 설명란에는 작품제목과 굳이 없어도 될 가격까지 적혀있다.
예술작품을 감상하는데 가격이 중요할까마는 가격이 붙는 순간, 그 그림에는 다른 가치가 정해진다.
그 가격으로 그림을 보게 된다.
"저게 그렇게 비싸? 고작 그 가격이야? 저것보다 비싸네? 아까 거보다 나은데 더 싸네?"
'나의 안목이 잘 못된 건가?'
'그런데 저 가격은 누가 매긴 걸까?'
자본주의에서는 어떤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니, 가격이 그만큼의 가치다라는 생각에 한편으론,
누군가가 그걸 가치로 인정해 주는 것이기도 하니 우울하게 생각만 할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감정, 마음, 위로가 되는 물질적인 게 아닌 것들에 명확한 정량을 표현하는 숫자를 붙이고 싶지는 않다.
사람을 넌 10원짜리야, 넌 100원짜리야, 넌 1억이야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예술품에 가격을 매기는 건 삭막하고 기분을 좋지 않게 하는 일이다.
내 맘에 들어오고 좋으면 최고이고, 아무리 유명한 예술품이라도 아무런 느낌이 없으면 무가치한 거다.
가격과 무관하게.
아름다움에 감탄을 연발하며 셔터를 눌러 폰의 앨범에 예술을 담아본다.
봄이라 화사한 꽃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모처럼, 여유롭게 그림감상을 하고 커피도 한잔하고 집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전시회는 이 삭막하고 불편하고 힘든 순간에 쉼이 되는 오아시스가 됐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녀는 어떠했을까? 그녀에게 힘든 일상을 잠시 잊는 기분전환의 물, 오이, 사탕이 되었을까?'
폰 속 작품을 손가락으로 훑고 있다.
예술작품 속에 그녀가 있다.
가수 싸이는 노랫말에 최고를 예술로 표현했다.
♬ 예술이야! 예술이야!♬
그녀는 예술이다.
P.S
너무 힘들게 살다 보니, 너무 여유가 없다 보니…,
그래서 좋아하는 것들을 포기하거나 지나치지 말고 잠시, 옆길로 새어 나가 보는 건 어떨까?
삶이 지치거나 숨쉬기 힘들 땐 의외의 것들이 쉼을 주고 삶의 여유를 주고 의미를 줄수도 있다.
목적, 성공, 나아감만이 아닌 내가 모르는 그 무언가가 당신을 운명처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그게 옆길이 아니라, 그게 앞길이었다는 걸, 이제야 내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걸…,
수십 년이 지난, 늙어버린 지금에서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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