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앤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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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태평하다.
여기까지 왔는데 동해바다를 봐야지 않겠냐며 문무대왕릉이 바다에 있으니 가잔다.
석양이 예쁠 거라며...
"쯪쯪, 여기가 서해니? 노을을 보게! 얼른 숙소나 구하시지.
일출을 봐야 할 거 아냐! 여긴 동쪽이라고.
바다 보이는 숙소에서 떠오르는 일출을 보면 정말 소원이 없겠네~~"
여자는 잠자리 걱정에 오늘 느낀 모든 감동이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단순한 남자는 다급해졌지만 고집을 부려본다.
"그래도 볼 거야, 바다!"
동해바다의 문무대왕릉을 네비로 찍고 힘차게 액셀을 밟는다.
차는 어느새 붉그스레 한 하늘을 배경으로 해안가를 달리고 있다.
동해에도 저녁이 오고,
그리고 밤이 올 것이다.
아들은 상황 파악도 못하고 세상모르는 철부지처럼 근사한 호텔 침대를 기대하고 있는데 아빠인 남자는 이런 성수기에 호텔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바다가 아닌 도로가에 달려있는 민박 전화 팻말에만 눈이 돌아간다.
그나마 구할 수만 있다면, 보물찾기 하듯 간절하다.
남자는 혼자가 아닌, 여자와 아들에게 포근한 휴식처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는 남편이자 아빠다.
그러나 아들은 왕자라서 호텔이 아니면 실망만 안겨줄게 뻔한 기정사실이다.
아들은 알까?
계획 없는 여행이 다른 의미론 대책 없는 여행임을.
살다 보면 대책없이 살 수도 있고 예기치 않게 더 의미가 생길수도 있는 인생은 오리무중이란 것을.
인생은 자신이 만드는 가치라는 걸.
아들은 그저 배터리 타령이다.
오로지 핸드폰이 먹통 되는 것만 걱정되고 초초하다. 나머진 아빠가 알아서 할 테니.
중간중간 카페에서 충전도 했건만 배터리가 금세 바닥이다.
여행 와서 관광이 아닌 폰 안의 관광을 맘껏 하는 중이다.
아들은 세상모르고 걱정 없다.
어느새 문무대왕릉에 근처라고 네비가 말한다.
숙소 걱정에 오는 내내 눈을 돌리느라 깜박했다.
"어, 그런데 고분 같은 것도 건물도 없는데? 바다 멀리 홀로 떠 있는 바위, 저게?"
네비가 가리키고 있다.
그렇다! 문무대왕릉이다.

<사적 제158호. 대왕암(大王岩)삼국통일을 완수한 문무왕(文武王)은 죽어서도 국가를 지킬 뜻으로 유해를 이곳에 뿌림>
멀리 보이는 바위 모습이 마치 콧날처럼 오뚝한 것이 문무왕이 누워있는 옆모습처럼 보인다.
그 모습을 보니 우리도 눕고 싶다.
누울 곳, 주위를 둘러본다.
바닷가라 횟집을 운영하며 숙소도 함께하는 곳이 많다.
'좋은데! 바다 보고 회 먹으며 바로 잠자리까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연락처가 보이는 족족 문의하지만, 역시나다.
이렇게 좋은 여건의 숙소가 이런 성수기에 남아 있을 턱이 없겠지.
잠시 흥분했던 남자는 민망하다.
점점 날은 어둑해지고 구름이 몰려온다.
좀 외진 곳으로 가봐야겠단 생각에 포항방향과 부산방향 중 결정해야 한다.
남부지방은 비가 온다 하니 위쪽으로 가보자.
이런 상황에 비까지 내리면 더욱 불안할 테니...
정해진 곳이 없으니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정말 자유여행이다.
그런데 현실은 자유가 아닌 방임이다.
'제발 우릴 위해 남아있는 방하나만 있기를...'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 했다.
이렇게 열심히 찾는데 하늘도 도울 것이다.
포항 방면으로 향하며 그 와중에 먹거리를 생각한다.
포항하면 과메기밖에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게장, 굴젓, 젓갈류, 과메기 등등 비릿한 것들을 그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남자와 여자는 식성도 취미도 성격도 잘 맞는 편이다.
16년을 살다 보니 닮아진 것도 있지만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에 다른 것보단 비슷한 점이 더 많은 사이다.
하루 종일 몇 마디 안 할 때도 있으니 재미없다고 할 수도 있겠다.
이런 모습에 어머니 왈 "너네 재밌니?"하고 질문할 정도다.
여자는 가끔 남자를 보고 빵 터지는 걸 보면 정말 남자가 여자의 예상을 깬다거나 아니면 여자는 특이한 웃음코드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남들이 모르는 그들만의 신호가 있는 듯하다.
재미로 살까? 동반자요. 서로의 반쪽인걸. 닮아서 닮아가서 편하다.
거울 앞에 나인 양 서로를 바라보고 내맘네맘을 아는...
남자는 운전하고 여자는 전화번호를 수없이 눌러댄다.
"방 있나요?"
"없어요"
"방 있나요?"
"오늘 같은 날은 어디에도 없어요"
통화를 할수록 절망이다.
저녁도 굶어서 인지 더욱 비참하다.
숙소 해결하고 맛있는 저녁을 먹고자 했건만,
숙소도 근사한 저녁도 그건 꿈같은 환상이었다.
시간은 흐르고만 있다.
'문 닫기 전에 식사라도 할까?'
5년 전 유난히 일찍 문 닫던 통영의 식당을 떠올린다.
그때 울리는 낯선 전화번호!
"여보세요? 전화하셨나요?"
하두 걸어데서 어딘지 모르겠다.
일단 "방 문의차 연락드렸어요~~."
"아, 네. 마침 복층의 아주 큰 방이 하나 있습니다."
'앗싸!'
"그런데 거기가 어디죠?"
지나치며 전화했던 곳이다.
차를 냉큼 180도 돌려 찾아온 행운을 놓칠세라 다시 액셀을 밟아댄다.
1층엔 편의점이 있는 건물에서 수수해 보이는 주인이 반긴다.
조급한 맘 들키지 않게 차분히 "방보고 결정할게요~~"라고 말하는 대단한 협상 기질의 그녀.
방문을 열자 창가에 동해바다가 넘실댄다.
'오 마이 갓!'
그녀의 바람처럼 날씨만 좋았으면 숙소에서 일출을 볼 수 있을 뻔했다.
그녀 덕에 괜찮은 협상이 됐다.
그래도 절반은 성공한 운이 좋은 날이다.
계획 없는 여행인걸 생각하면 하늘이 도왔다.
밤이 늦어져 포장한 회 한 접시와 소주로 속을 달랜다.
아들을 위해 냄비라면도 끓인다.
아들은 생각지 못한 상황에 할 말을 잃었다.
처음 겪는 예상치 못한 긴급한 상황에 어찌 대처할지 모르겠다.
호텔은커녕 침대도 없다.
아무튼 최악이다. '이건 여행이 아니야!'
아빠 엄마와 다른 기쁨이 아닌 당황한 '오 마이 갓!'이다.
침대없는 잠자리는 불편하지만, 이불바닥에 등을 드밀고 있는 이 순간만큼은 마음이 평화롭다.
숙소를 얻고자 치른 한바탕 난리를 생각하면 감사할 뿐이다.
천장을 보며 생각해 본다.
오늘 하루 돌아보니 많은 추억이 쌓인 듯하다.
어느새 스르르 잠기는 눈.
'내일 걱정 없이 하루살이처럼 오늘 잘 살았네'하고 말하는 듯 피곤에 지쳐 모두 잠을 자고 있다.
꿈꾸는 듯 새근새근, 같은 자리 다른 꿈을 꾸며.
"따로 또 같이~~"
내일은 또 그들에게 무슨 일이 기다릴까?
#가족여행 #숙소 #문무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