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앤드장
·
5 min read
아들
중3학년인 아들.
쳇바퀴 돌던 일상의 무료함을 느끼며, 그나마 친구와 운동하는 것에 위안을 삼고 있던 차에 어찌 알았는지 학교 휴업일에 맞춰 아빠가 갑자기 여행을 가잔다.
그것도 목적지 없이 먼 남해 쪽으로.
당황스럽다.
이 시국에 숙소 예약도 없이 아빠가 저러다니?
'계획 세우는 건 일가견이 있는 아빠니 뭐 저래도 계획이 다 있겠지!' 속으로 생각하고 아무 내색하지 않는다.
'여행이라, 이게 얼마만인가? 좋은 호텔에서 맛난 것도 먹고 맘껏 게임할 생각에 은근히 설레지만, 한 시크하는 아들은 티 나지 않게 조심한다.
지금껏 그랬듯, 부모님이 가자는 데로 나서면 그만이다.
중학교 입학하며 부모 입장에 괜찮은 동네로 이사오자마자 코로나로 2년 넘게 여행도 못 갔지만, 이곳에서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갑자기 바뀐 환경으로 친구를 사귀어야 하는데 그놈의 코로나는 학교에 갈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자연스레 온라인게임에 중독되고 자꾸 소심증 같은 게 올라왔다.
고민이랄거까진 아니지만, 아들만 겪는 이런 상황이 좋을 리 없고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다.
'이곳에서 잘할 수 있을까?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은데…'
생각처럼 안되면 작아지는 목소리처럼 소심증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중학교 첫 시험.
이사 온 이 동네는 학원밖에 없고 아이들은 게임도 안 하고 공부만 하는 것 같아서 스스로 주눅이 들지만 그래도 해보자.
뜬금능력자 2등이라니! 스스로가 놀랍다. '뭐지? 별거 아닌데!'
사실 아들은 운동을 좋아한다.
누구에게 물려받았는지 모를 승부욕과 운동신경은 3살 때부터 발휘되었다.
공원에서 치던 배드민턴을 시작으로 유소년 축구대회, 달리기 학교 대표선수, 초등 6학년에 벌써 태권도 4단증을 득할 정도로 운동을 좋아하고 잘한다.
체육과목이 있는 날은 설렌다.
그러나 중3이 되자 심리적 압박감이 앞선다.
3년 동안 이곳에서 아주 느리게 적응된 듯, 이젠 이방인이란 생각이 아닌 토박이처럼 적응이 되어갔다.
게임도 분위기로 인해 자의 반 타의 반 자연스레 끊게 되고 이곳의 아이들처럼 생각하고 생활한다.
이곳인지, 우리나라인지, 인생이 그런지 모르겠지만, 잘 사는 건 그냥 좋은 고등학교, 대학을 가야 하고 그러려면 "공부를 잘해야 해"가 답이다.
아빠, 엄마도 그렇다 한다.
'정말일까? 정말이겠지! 사랑하는 아빠, 엄마인데….'
이젠 좋은 소린지 모를 잔소리로만 들리지만.
5년 전 지방여행의 추억을 곱씹으며 차에 몸을 싣는다. 그런데 이번에 왠지 불안하다.
그래도 난 아빠, 엄마를 믿으니까.
"렛츠고~"
여자
휴~, 오늘도 한숨만 나온다.
JS는 그녀를 지치게 만든다.
상담사로 8년을 일했지만, 진상들을 상대하기는 익숙해지질 않는다.
파김치가 되어 퇴근해서 저녁상을 차리고 다시 출근하고 이런 일상이 지친다.
나름 포부를 가지고 편집일을 그만두고 좀 더 안정적이고 오래 할 수 있는 직업으로 전향을 했지만, 사람을 상대하며 몇 년을 반복적인 일을 하다 보니 자신과 주변의 중요한 것들에 대해선 정작 둔해지고 짜증만 늘어나는 듯하다.
그러나, 그녀에겐 아들과 남편이 있다.
활력이 되는지, 피곤이 되는지 알 수 없는 존재들.
직장은 8년이지만, 아들은 15년, 남편은 18년이다.
가화만사성이라고 믿고 있는 그녀지만, 이런 일상은 그런 기본적인 것들을 상기시키지 못하고 하루살이처럼 그저 윙윙 JS만 머리에 맴돌 뿐이다.
그런데, 남편이 갑자기 계획 없는 여행을 가잔다.
'뭐지? 그럴 양반이 아닌데!'
물론 그녀도 그럴 사람이 아니다.
MBTI도 J로 끝나는 계획형의 그들.
'일 년에 여행 한번 가기도 힘들고 바쁜 우린데, 저 양반이 뭔 생각이지?'
그간 답답하긴 했나 보다 생각한다.
2년 넘는 코로나와 자꾸만 나빠지는 몸상태.
부모님을 여의고 상실감에 병까지 얻어 이래저래 힘들었을 그다.
옆에서 지켜보는 그녀 또한, 아픔을 같이하며 그야말로 동고동락하며 희로애락을 같이 했다.
그런데 남해 쪽 그 먼데를 그가 과연 갈 수 있을까?
꿈이 현모양처인 그녀는 무조건적인 믿음으로 언제나 그랬듯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무작정 그를 따른다.
'그래? 가보자~'
"렛츠고~"
남자
올해 50살이 되면서 뭔가 변곡점을 찍고 싶던 그.
지천명이라 했던가? 하늘의 뜻을 알 나이.
나름 쉼 없이 달려온 남자는 어느새 반백이 되어 보니 아내와 아들뿐이다.
일을 사랑한다던, 자신을 사랑한다던 그.
'정말이었을까?'
스스로 질문하고 의심한다.
순간순간 진심이었겠지! 그러나 반백을 먹고 하늘의 뜻을 살피니 부질없다.
일하며 스트레스는 일상이고 긴장의 연속이며, 스스로 혹사시키며 약에 의존해 전전긍긍하고 있는 걸 보니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나 보다.
문득, 여행, 가족여행을 떠올린다.
'여행이 즐거웠지, 지나고 나니 추억은 여행이었어!'
중3 아들이 고등학생이 되기 전에, 유독 힘들어하는 와이프의 기분전환을 위해, 여행을 갈 수 있는 용기가 생길 때 하루라도 빨리 떠나자.
지금이 가장 좋을 몸상태일 테니, 몸고생이 될지언정 추억으로 남을 테니, 지루한 일상을 탈출해 보자.
그냥 무책임하게 여행 가보자.
이불 하나 뭉쳐 넣고, 이런 날씨면 얼어 죽지 않을 테니….
"렛츠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