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앤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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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살일까?' 창문으로 쏟아지는 밝은 빛으로 커튼이 밝아졌다.
커튼새로 빛이 들어온다.
'몇 시지? 일출이 끝났나?'
남자는 커튼을 살짝 열어본다.
하늘이 우중충하다. 그러나 넘실대는 바다와 파도에 창문도 살짝 열어본다.
동해바다임을 말하듯, 파도소리가 실감 나게 들려온다.
설사 날 좋아서 해를 볼 수 있었어도 일찌감치 일출이 끝난 7시가 훌쩍 넘었다.
그녀와 아들은 곤히 자고 있다.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배터리는 빵빵하다. 아들생각을 한다.
'재미있을까?' 여행임에도 핸드폰만 보고 있는 아들.
함께 여행하며 공감하고 이야기도 나누며 좋은 시간을 기대했는데...
맘이 편하지 않다.
세상흐름에 따라 학교 가고 학원 가고 공부하고 잘 크고 있는 건지...
코로나로 멀리 한번 가지 못하고 중3을 맞이한 세상물정 모르는 아들에게 이 연휴기간에 이런 여행도 한번 경험하게 하고 싶어 무작정 떠나온 여행.
무엇이건 대가가 따르는 것임을,
준비를 해야 좋은 결과가 있음을,
행운은 그냥 오는 게 아닌 준비된 자에게 오는 것임을,
공짜의 행운은 없음을,
무엇이든 간절해야 이루어짐을,
그 모든 것이 감사함임을 아직 모른다.
더욱 힘들어질 고등생활을 아들 스스로 받아들이고 변하지 않으면 더 힘들어질 텐데...
변화는 환경에 있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느끼고 한 단계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남자는 넘실대는 바다와 파도소리의 유혹에 곤히 잠들어 있는 아내와 아들을 두고 살며시 일어나 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온다.
자갈밭사이로 밤새 터졌던 폭죽의 잔해가 보이고, 흐린 하늘과 몰려오는 파도는 현실을 말하듯 생생하다.
여행을 하면 우리가 상상하는, 그림처럼 파란 하늘과 뭉게뭉게 흰구름이 보이는 그런 꿈같은 모습이면 좋으련만 지극히 다른 현실의 느낌을 준다.
그래서 생각하며 즐기는 상상하는 여행이 꿈이고 로망이고 희망이며 미래다.
지금 현실은 이렇다.
먹구름과 파도가 계속 몰아친다.
계획 없는 우리의 여행도 그렇다. 오늘도 파도가 여러 번 닥칠 것이다.
우리의 삶처럼...

쨍한 날이면 좋으련만, 하늘을 보니 곧 비도 올 모양이다.
'오늘 하루는? 그래,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비바다를 감상하며 하루 종일 책을 봐도 좋겠군.'
목적지 없이 왔으니 맘 가는 데로 편하게 하자.
'그럼, 책 보는 동안 아들은? 또 폰만 보고 있겠지? 음...'
고민하다 실내전시회를 가기로 생각을 바꾼다.
'부산에서 미디어아트전을 하는군, 좋았어!'
차에 짐을 싣고 오르는 순간, 툭! 툭! 빗방울이 떨어진다.
오늘은 비로 시작하는 여행이 되겠군. 후후~~
부산
차는 미디어아트미술관이 있는 남쪽도시 부산을 향한다.
어차피 비를 피하지 못할 것이고 비구름이 남쪽에서 위쪽으로 올라오기에 비를 관통하면 어쩌면 해를 볼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목적지는 미술관이지만, 배가 고프다.
여행은 별미를 먹어야 하는데 어제저녁식사를 제대로 못했기에 먹거리가 더욱 서운하다.
엊저녁 바베큐장을 끼고 있던 숙소에서 굽던 고기내음의 기억으로 우리의 다음 식사는 고기로 정해졌다.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메뉴지만 지금 이 순간은 간절히 고기를 먹고 싶다.
여행 왔으니, 제주도 오겹살을 검색하고 평점 높은 부산의 고깃집으로 네비를 변경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니, 배불리 먹고 아트를 감상하면 기분도 좋을 듯싶다.
부산이라 그런가 도로가 부산스럽다.
역시, 도시는 꽉꽉 막힌다. 주말이라 더욱 그러하리. 거기에 비까지 퍼붓고 있으니 낯선 도로에 정신이 없다.
오로지 네비만이 호롱불처럼 우리에 앞길을 밝혀준다.
해운대 근처의 식당에 어렵사리 주차를 하고 배를 채운다.
해수욕장 근처라 비 오는 바다를 보고 싶지만, 배부름은 또 귀차니즘을 불러오고 핑계를 만든다.
"예전에 왔던 곳이고 비도 많이 오니 그냥 미술관으로 가자"
꿉꿉한 공기와 세차게 내리는 빗방울은 활동반경을 좁힌다. 5년 전 부산을 테마로 여행했었기에 궁금하진 않다.
그래서 목적지는 미술관으로 고고.
미디어아트
비가 오는 휴일이라, 미술관은 출입구부터 사람이 넘쳐댄다.
비를 피해 목적지로 정했지만, 우리만 그런 게 아닌 듯. 다들 한마음인가 보다.
도심에서의 비 오는 휴일이라 그런가 보다 생각하지만, 일상에서 탈출한 여행인데 이런 북적거림은 맘에 들지 않는다.
세상살이가 그렇다. 사람은 다 비슷하니...
남들과 다른 일상을 살고 싶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이런 아트갤러리나, 여행을 갈망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일상과 다른 경험을 위해 작가의 독창적인 아트를 관람하며 잠시 그 속에 빠져 특별함을 느끼며 일상을 벗어나보려는 게 여행과 예술이 왠지 통하는 것 같다.
'비 오는 휴일에 여행을 와서 미술관을 가다.'
특별하고 평범하지 않으며 남들과 다르다고 위로하며 미술관을 들어서는 순간, 공기가 바뀐다.
비까지 오며 자갈치 시장처럼 어수선하고 부산스럽던 공기가, 어두운 배경에 조명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시선을 끄는 아트작품으로 인해 순간 사람들은 관람모드가 된다.
우리의 안구와 달팽이관이 적응될 무렵, 다음 홀로 들어선다.
"헉!"
순간 거대한 코끼리와 마주치고 앞으로 걸어오는 코끼리에 흠칫 당황한다.
육중한 몸체와 무거운 발걸음으로 묵묵히 걸어오는 코끼리, 그 발자취가 엄청 묵중 하다.
힘이 넘치던 코끼리의 상아가 점점 작아지고...
잠시 후엔 그 무거워 보이던 코끼리는 둥둥 뜨더니 하늘로 날아가 버린다.
그 자리엔 새로운 아기 코끼리가 탄생하고.
코끼리의 일생이다.

남자는 생각한다.
저런 묵중한 인생을 살겠노라고...
나의 길을 묵묵히 걸으며 가볍지 않은 생을 살다 미련 없이 내가 온길로 돌아가련다.

례로 줄 서서 감상하는 전시회가 아닌 미디어아트를 공간에서 자유롭게 느끼는 전시회다.
방에 누워있기도 하며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작품들이 따듯하다.
자유여행이지만 꽤나 먼 거리로 쉴 틈 없던 몸과 마음에 모처럼 휴식을 주는 단비 같은 시간이다.
비 오는 날 부산에서 아트감상, 특별한 괜찮은 선택을 한듯하다.
덕분에 꿉꿉한 느낌은 사라졌고 색다른 기분전환이 됐다.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아직도 비가 뿌려대고 있다.
일상으로 복귀를 향해가는 우리 여행의 시간도 비 뿌리듯 흘러가고 있다.
벌써부터 아쉬움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래도 우린 아직 여행 중이고 계속 달려간다.
마지막 여행지가 될 여수를 향해~~
#미디어아트 #부산 #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