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앤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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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밝았다.
밤새 낭만으로 가득했던 거리는 붉은 천막 대신 컨테이너만 남아 있다.
밤에만 열리는 야시장처럼 젊음과 활력이 넘치는 여수 풍경은 바다와 조명이 더해져 낭만이 있는 축제와 같은 느낌이었다. 역시 낭만도시 여수다웠다.
그러나, 날이 밝은 아침 풍경은 평화롭고 조용하다.
숙소 창밖으로 보이는 돌산대교 밑으로 생을 위한 고깃배가 지나가고...

여행 마지막 날,
비구름이 지나간 후 공기는 상쾌하고 하늘은 파랗다.
지나가는 시간이 아까운 마음에 서둘렀음에도 한 시간가량을 대기해서 여수 해상 케이블카에 올랐다.
케이블카를 타고 바라보는 풍광은 어떨지 두 근 반 설렘 반이다.
줄 하나에 매달려 바다 위를 건너는 기분이란, 아찔하다가 아름다운 경치에 할 말을 잊는다.
스피커에선 여수 밤바다가 흘러나오고...
케이블카를 타고 10분가량, 눈과 귀가 호강을 하며 이동하면 오동도 입구에 도착한다.

섬의 모양이 오동잎처럼 보이고 오동나무가 많아 오동도라 불리게 됐다고 한다.
오늘도 긴 하루일 것을 대비해 육지와 섬을 오가는 편한 동백열차를 타고 싶지만 이것조차도 이미 만원이다.
바다를 벗 삼아, 바다 위 도로를 산책하듯 천천히 걸어 입장한다.
산책하며 바라보는 바다 풍경은 섬과 잘 어우러져 아름답다.
온 섬이 푸른 잎들로 무성하다. 특히, 끝이 뾰족한 타원모양잎의 동백나무가 많이 보인다.
동백꽃이 만발하면 더 운치가 있으리라. 동백꽃 피는 3~4월의 모습도 궁금하다.
줄지어 걷는 많은 관광객들로 몸살을 앓을 만도 한데, 잘 관리된 탓인지 아니면 하두 울창한 숲이라 그런지 보기 좋은 경치는 훼손된 지는 잘 모르겠다.
매점 같은 곳은 없지만 화장실은 여러 곳에 설치되어 있다.
아들은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긴장과 불안의 연속이던 여행에서 차분히 산책하는 지금 신호가 왔다.
흔적을 남기듯 아들은 여수 동백섬에 잔여물을 남기고 언제나 그렇듯 남자는 화장실 밖에서 아들을 기다리고 있다.
아직도, 아니 죽을 때까지 자식은 부모의 아기겠지만, 이젠 내적 독립심과 자립심이 조금씩 자라날 때라 하나씩 서로의 습관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한다.
입에 넣어주던 먹이를 직접 찾아 나서는 성장하는 아기새처럼.

울창한 오동도를 산책 삼아 한 바퀴 돌아 나오니 배꼽시계가 신호를 보낸다.
여수먹거리로 급 검색한 갈치조림을 먹고 전망 좋다는 낭만카페를 가기로 한다.
카페 통창으로 바라다보이는 대낮에 여수의 풍경은 또 다른 느낌이다.
바다를 끼고 있음에도 어촌의 느낌이 아닌 오밀조밀 아기자기한 숲과 도시와 바다가 공존하는 건강하고 깨끗한 느낌이다.
낭만이 있다. 예쁘다.

풍경만 보고 가만히 있어도 힐링이 되는 낭만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시집도 보며 일상으로 가기 위한 장거리 운전을 앞두고 몸과 마음에 배터리 충전하듯 여유롭게 휴식을 취한다.
남자와 여자는 활동적인 것보다는 이렇게 있는 게 진정한 휴식이라 여긴다.
시곗바늘은 아랑곳하지 않고 제 할 일을 열심히 하고...
"재깍재깍~~"
올라오는 길은 그야말로 졸음과의 사투다.
남자가 꿈뻑꿈뻑 졸음운전을 할까 불안한 그녀, 다시 한번 '운전연습을 할걸' 하고 후회가 몰려온다.
'많이 피곤하리라.' 남자의 이런 모습은 처음이라 아들도 아닌데 대견하려고 한다.
남자는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지금이 가장 젊은 때라 감안하면 더 늙기 전에 컨디션이 괜찮은 요즘 굳은 결심하고 여행을 온 것이다.
그런데 스스로 놀라는 중이다.
과거를 비춰보아 어느 정도 힘들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멀쩡해서.
아쉬운 마음도 달래고 계속되는 아스팔트 위의 지루함과 졸음을 깰 겸, 출출할 시간에 맞춰 전주 한옥마을에 들른다.
연휴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한산하고 한옥들 풍경은 고즈넉하다.
기억을 소환해 5년 전에 들렀던 그 떡갈비집을 찾아 요기를 채우고 한가롭게 한옥 사잇길로 산책을 한다.
여행의 마무리로 제격이다.
나름 아쉬운 맘을 달래고 다시 일상 복귀를 위한 차에 몸을 싣는다.
가야 할 길은 멀고 장시간 운전으로 다시 졸음이 몰려온다.
어쩔 수 없이 휴게소에 들러 잠시 눈을 감는다.
벌써 꿈같은 여행, 불과 몇 시간 전이지만 오래전 일 같다.
'우리가 여수 바다에 있었단 말인가?'
경주를 시작으로 부산 여수 전주를 돌아 집으로 향하고 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여행이건만 벌써 아쉽다.
여유만 있다면 하루 더 연장하고 싶은 맘이다.
예상치 못한 일정들이 오히려 즐거움을 선사한 건지, 아쉬움에 더 채우고 싶음인지 여행의 끝자락을 부여잡고 있다.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다.
각자에게 나름의 가치 있는 여행이었기를...
아들에겐 뻔한 여행이 아닌 걱정과 실망과 약간의 모험이었을 여행이지만, 무계획의 여행에 조금은 두려움이 사라진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준 여행이었기를...
여자에겐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난 여행으로 다시 리프레쉬되어 삶의 소중함을 생각하며 살 수 있는 여유를 주는 여행이었기를...
남자에겐 즐거운, 그리고 이뤄낸 마지막이 아닌 여행이었기를...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떠나온 여행이지만,
각자 다른 생각과 느낌으로 항상 같이하고 가치 있던 여행.
각자에게 나름의 힘이 되었을 "우리들의 여행"이라 믿는다.
"따로 또 가치"
남자는 다시 운전대를 부여잡고 출발한다.
다시 일상으로~~ 렛츠고!!!
#가치 #여행 #낭만